<강화도소식>죽산 조봉암 생가터'가지마을'로 잠정 확정(인천일보)
<강화도소식>죽산 조봉암 생가터'가지마을'로 잠정 확정(인천일보)
기념사업회, 심포지엄 개최 … 조사위원회"80% 확신"
2012년 11월 21일 (수)
인천의 큰 정치인 죽산 조봉암 (1899~1959) 생가터가 강화 선원면 금월리 '가지마을'로 잠정 확정됐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중앙회는 20일 인천종합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죽산 조봉암 선생 생가터 확정을 위한 심포지엄을 갖고 이 같이 잠정적으로 확정했다.
선원면은 죽산이 1957년 잡지 '희망'을 통해 "강화도 남쪽 원면이라는 촌에서 나서"라고 표현한 만큼 그동안 이견이 없었으나 정확한 생가지는 논란이 많았다.
기념사업중앙회와 인천·강화지역 향토사가를 중심으로 지난 9월 발족한 '죽산조봉암선생 생가터 발굴을 위한 조사위원회'는 이날 심포지엄을 통해 금월리 가지마을과 지산리 남산대로 생가터를 압축해 보고를 마쳤다.
김경준 인천시사 편집위원은 '강화공부 및 원로, 친족 면담을 통한 조사보고'에서 "가지마을 출신의 조규성(77)씨가 22세이던 1957년 강화성내보통학교(현 강화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뒤 죽산의 생활기록부에 '가지마을에서 태어나서'라는 대목을 봤다고 밝혀왔다"고 밝혔다.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죽산이 이승만과의 맞대결에서 '투표에서는 이기고 개표에서 지는'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며 2위에 올랐다.
대선 직후였던 만큼 죽산에 대한 관심은 높았고 평소 마을 어르신들에게 "조봉암이 가지마을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던 조씨의 증언이었던 만큼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는 것이 조사위원회의 결론이다.
가지마을은 선원사지 주변으로 가지를 많이 심었다 해서 불리고 있으며 가진마을, 가즌마을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금월리 16· 26· 31번지 일대로 모두 6채의 가옥으로 구성돼 있으며 죽산 탄생 시기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위원회 이원규(소설가·죽산 평전 저술) 간사는 "죽산이 태어나기 직전인 1800년대 중·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죽산의 집안 족보를 분석한 결과 증조부와 형제들, 조부와 4촌 묘의 86%(14곳중 12곳)가 금월리가 집중돼 있다"며 "여러 경로를 확인한 결과 가지마을이 80%, 남산대가 15% 정도 확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우기자 theexodus@i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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